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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4.17 16:27

구원 얻는 믿음의 본질적 요소들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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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d_SlIRcoCj0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구원을 얻는 참된 믿음에 대하여 입니다. 믿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피스티오 라는 단어는 무엇에 달라붙다, 밀착하다, 의뢰하다, 의지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 속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믿다 라고 할 때에 첫째로는 사물이 아니라 그 대상이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인격적입니다. 믿음이 인격적이라고 하는 것은 믿음은 인격을 가진 존재들 사이에서 통용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믿다 라는 단어는 그 좌소가 마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좌소라는 것은 머물고, 존재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성경이 구원을 얻는 믿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정의하고 있는 말씀을 보면 로마서 109절을 보면 바울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에 이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에 대하여 너의 마음에 믿는다고 합니다. 즉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 마음에 있으며 이 마음이 하는 일이 믿음의 내용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이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의 마음에 믿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믿음은 어디에서 일어나게 되고 구원을 이루게 되는가 하면 바로 마음에서 구원을 얻을 믿음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마음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역사를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것과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 구원을 얻는 믿음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것을 알게 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구원을 얻는 믿음이 발생하는 마음의 작용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이해할 때에 나의 구원이 바른 방식으로 또한 온전한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특히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는 것이 옳은 것이며, 구원에 이르도록 어떻게 인도하며,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바르게 구원을 얻는 믿음에 이르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서기관과 바리새인과도 같이 어리석은 자들이 되는데 마태복음 2315절을 보면 자신도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없으며, 자신도 모르는 길을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이 바리새인들의 경우와 같이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일을 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구원을 얻는 믿음의 방식에 대하여 말씀을 연구하며, 살피는 일은 자신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는 믿음이 마음에 일으키는 것은 첫번째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뉘우침이 마음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를 들어 말씀하시는 두 아들의 비유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마태복음 21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두 아들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자신의 첫째 아들에게 가서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다음 절인 29-30절을 보면 이 아버지에 대한 두 아들의 반응이 함께 나오는데 마태복음 2129-30절을 보면 대답하여 이 말씀을 살펴볼 때에 영어 성경과 한글 성경이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이유는 참고한 사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첫째 아들의 반응과 둘째 아들의 반응이 한글 성경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번역한 사본이 NASV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한글 성경과 다릅니다. 그래서 다른데 한글 성경에서는 첫째 아들에게 아버지가 가서 포도원에서 오늘 일하라고 하자 첫째 아들은 가겠나이다 하고 말한 후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요청함을 받은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 하였다고 그 후에 뉘우치고 갔다고 합니다. 반면에 영어 성경은 첫째 아들이 I will not 이라고 했다고 but later he changed his mind and went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첫째 아들의 반응과 둘째 아들의 반응이 영어와 한글 성경이 다르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갔습니다.

        한 아들은 아니오 라고 했다고 갑니다. 그러나 다른 아들은 예 라고 한 후에 가지 않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요청에 아니요 했다가 후에 간 아들의 경우를 보면 그가 후에 뉘우치고 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뉘우치다 라는 표현은 두 단어의 합성어 인데 후에 라는 단어와 관심을 가지다, 괴로워하다, 걱정하다, 염려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아버지의 요청을 받은 아들은 당시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이 일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요청을 거절한 후에 이 일에 대하여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음이 관심을 기울이자 자신이 아버지에게 행하였던 것이 옳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그의 마음은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들어올 때에 구원을 얻는 자들의 마음에 일어나게 되는 뉘우침입니다. 그의 마음이 쓰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관심을 가지게 되며, 그것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입니다. 고민하기 시작하며, 마음이 괴롭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뉘우침의 상태 자체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반드시 산출해 내는가 하는가 대하여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하여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의 영혼이 불안함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편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뭔가 잘못되고 있으며, 온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누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에 대한 마음이 쓰여짐이 일어났다고 해서 즉 마음이 복음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모두다 참된 믿음의 결실로 나타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비록 뉘우침의 마음이 일어 나더라도 곧 그 뉘우침에서 마음이 멈추는 경우들이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73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되됨 즉 예수님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갔다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뉘우쳐 라는 단어는 앞서 마태복음 2129절에서 아버지에게 아니요 라고 말한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간 아들이 한 것과 같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후에 고민하게 되었으며, 마음이 괴로운 상태가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누우쳤지만 그는 구원을 얻은 믿음에 이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하여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에 뉘우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고민되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야겠구나, 교회를 다녀야겠다, 신앙 생활을 해야겠다 하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구원을 얻는 믿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에서도 그리고 씨뿌리는 비유 속에서 예수님께서 구원 얻는 참된 믿음의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12절을 보면 길 가에 뿌려진 씨의 의미에 대하여 해석하시며 이는 말씀을 들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에 말씀이 뿌리 내지 못하며,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빼앗긴 마음은 믿을 수 없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13절과 14절을 보면 바위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한다고 합니다. 뿌리가 없다는 말은 마음에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믿다가 라는 말에서 잠시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듣고 받았습니다. 받았다는 말은 성경의 가르침에 동의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대하여 부인하지 않으며, 성경의 기적이나 이적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대하여 알고 받습니다. 동의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것입니다.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의 경우에도 마음에 믿음이 온전히 성숙하지 못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음절인 누가복음 815절을 보면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고 합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은 앞의 마음과 다른 것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이라는 의미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리나 그 마음에 말씀을 지키는 것 즉 소유하고, 간직하고,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착한 마음으로 착한 이란 적합하고, 추천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마음인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의 마음은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는데 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뉘우친 아들은 뉘우치는 마음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아들은 뉘우치고 곧 포도원으로 간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뉘우침으로 시작되지만 이 뉘우침은 반드시 회개로 이끕니다. 회개가 없는 뉘우침은 뉘우침으로 끝이나고 그에게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뉘우침이 참된 것이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회개함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마음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repent 라는 말은 라틴어로 다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생각하고,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더 깊은 차원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원으로 간 아들이 그러한 것입니다.

        헬라어의 회개라는 단어는 메타노니아 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이성의 사고를 바꿈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생각하고, 사고를 바꾸고 다른 결론에 이르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 없이 진정한 믿음이나 참된 회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구원을 얻는 참된 회개가 이끌어 내는 마음의 상태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79절을 보면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근심하므로 회개하였다고 하는데 이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기 회개하였다고 하는가 하는 내용에 대하여 다음절인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거시라고 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슬픔은 회개를 가져옵니다. 이 슬픔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일으키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슬픔이 있게 되며, 뉘우침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되게 되는 방향은 구원으로 이끄는 회개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회개에 이르게 된 구원을 얻는 마음의 상태가 11절에서 말씀되고 있는데 고린도후서 711절을 보면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얼마나 변증하게, 얼마나 분하게, 얼마나 두렵게 얼마나 사모하게 얼마나 열심이 있게,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난 슬픔은 마음에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 결과 모든 요점에서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기를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마음은 간절하게 합니다. 무엇에 대하여 간절 즉 열심있게 하는가 하면 변명하게 하며 라는 뜻은 자신들이 범했던 죄를 진지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게 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하나님께 깨끗함을 받기 위하여 애쓰는 것입니다. 또한 분하게 하며 라는 말은 몹시 괴로워하다, 노하다, 흥분하다 라는 뜻으로 자신들이 행한 지난날의 범죄에 대해서 스스로를 향해 분노한 것을 말합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자들 중에 그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면서 영적 분노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또한 두렵게 하며란 본래 공포를 뜻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모하게 하며 영적인 것들에 대한 마음의 간절한 바램이며, 열심 있게 하며 란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 그리고 벌하게 라는 뜻은 정의롭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스스로 입증하고 그것이 자신들의 삶에 나타내게 되는 것이 바로 참된 회개인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에 이를 때에야 새 사람이 된 것이 증명이 되며,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참된 회개에 이르러 나의 마음은 착한 마음 좋은 마음의 상태로 있는가? 바로 말씀을 소유하며, 말씀을 붙들며 인내함으로 이러한 의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속게 되어 거짓된 평안과 확신 가운데 살다가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네가 너를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들음으로 인해 때늦은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시고, 자신의 구원을 확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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