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buJp87yErDM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안식일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을 하여 시내산에 도착한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계명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안식일에 대한 부분입니다.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왜 우리는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부분을 먼저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 대한 부분을 여러분들께서 궁금해 하시고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하는 부분에서 고민하고 계셔서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안식일에 대한 말씀은 지금도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안식일 교회 같은 곳에서는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고수하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안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을 지킵니다. 이것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분명하게 제 4계명에 안식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는데 오늘 우리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킵니까? 라는 질문에 잘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글쎄요 그냥 교회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던데요 라는 말을 합니다. 정말 오늘날 정통 기독교는 모두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현재의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켜야만 제 4계명을
지키는 것일까요? 그 부분을 성경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논증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시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집중하십시오. 먼저 우리가 읽은 본문을 봅시다. 8절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어순으로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그 안식일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룩하게 하다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는 분명하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을 좀 보겠습니다. 신약에서 안식일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로마서
14장 5-6절을 보면 본문에서 바울은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깁니다. 또는
모든 날을 다 같게 여기기도 합니다.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향하여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당시에 로마
교회 안에는 유대교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으로 개종하여 신자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직 교리적인
문제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던 때이었기에 그 안에는 무엇을 어떻게 결정하며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개종한 유대인들은 구약에 나타난 특별한 날들이나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 결과 혼란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각자 자기 마음에 확정하라고
합니다. 이 확정은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주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해서 입니다. 즉 신약에서
날은 이제 주님을 위한 날이 되었고 주님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제 골로새서 2장 16절과 17절을
보겠습니다. 본문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첫 단어인 그러므로 라는 말은 앞의 내용에 대한 결과입니다. 앞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신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 즉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규정과 요구를 기록한 것을 도말하셨다고 합니다. 도말하셨다는 말은 닦아서 지워 없앴다는
의미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다 지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통하여 율법의 모든 요구들이
성취되었기에 16절에 그러므로 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이 요구하는 먹고 마시는 문제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우리를 폄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폄론이라는 말은 비난하거나 정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누구든지
이 문제를 가지고는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신약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로는 이제 토요일이라고 규정된 날짜로써의 안식일은 주장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안식일이란 의미가 가지는 내용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즉
안식일인 지금의 토요일이어야만 된다는 형식이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인 남은 것입니까? 안식일이라는 날짜로써의 형식은 사라졌지만 안식이라는 내용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하여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까? 첫 번째로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안식 후 첫날 즉 지금의 주일, 주님의 날이라고 불리는 날에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교제하며
예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입니다. 안식
후 첫날입니다. 즉 현재의 주일 입니다. 이날 성도들이 떡을
떼려고 모였습니다. 여기서 떡을 뗀다는 말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성도의 교제와
또한 주님과의 교제가 들어있는 것이며 이것이 예배의 한 형식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다른 구절은 고린도전서 16장 2절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단어를 유의하여 보십시오. 매주일 첫날입니다. 이들이
매주 첫날에 헌금을 합니다. 매주 마다 첫날에 자신들이 얻은 이득을 저축하여 둔다는 것은 이들이 매주
첫날 즉 주일에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안식일이라는 날짜와
요일이라는 개념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기적으로 주일이라는 날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식일이라는 날짜적 개념과 형식이 없어졌다면
무엇인 그 남아있는 내용입니까?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출애굽기
20장 8절을 보면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라는 말씀에서
여러분은 어디에 초점을 둡니까? 거룩히 지키라는 말에 초점을 둡니까?
예 이 말씀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강조는 기억하다 라는 동사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억하다 라는 것은 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첫 번째 뜻은 "알아보기
위해서 표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날은 잊지 않기
위해서 표시를 해두어야 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표시를 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요하지 않다면 표시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꼭 표시를 해서 기억해야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하나님께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알아보기 위해서 표시해야 합니까?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이라는 말 앞에 "그" 라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의미는 이미 알고 있는 그
날이라는 것입니다. 이 안식일은 그냥 일반적인 어떤 쉬는 하루가 아니라 그날이라는 특정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안식일이라는 의미 속에는 11절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육일 동안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 칠일에 쉬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창세기 2:3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안식일은 일반적인 토요일이라는 날짜적 개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안식하셨던 첫 번째 그 안식일을 가리는 것입니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안식일은 그 안식일로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복되며 거룩하게 하신 그날입니다. 이 날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은 단순히 노는 날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며 그분이 창조주이심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출애굽기에서 나타난 안식일의 개념은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네 장막에서 나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불도 피우지 말고
음식도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민 15:32절에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하러 갔다가 백성들이 돌로 쳐죽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날이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이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서라도 각인 시키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너희 마음대로 하는 날이 아니라 나를 기억하는 날이고 내가 세상의 주인임을 기억하며 너희는 나의 백성임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6장 29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 육일에 두배의 만나를 주시는 이유나 안식년 전의 해 즉 6년째에 두배의
결실을 맺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의 힘으로 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으로 살며 나로 인하여 너희가 존재함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의 안식일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일은 이 안식일의 형식이 아닌 이러한 내용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주일 중 하루를 쉽니다. 이날이 어느 날이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전통적으로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날 우리가 우리의 일상에서의 모든 일을 마치고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날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심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주일은 그냥 하루를 쉬는 것이 아닙니다.
이날은 세상에 우리가 고백하는 날입니다. 이날 우리가 모든 일상의 삶을 멈추고 하나님께
나아옴으로 인해 세상은 왜냐고 묻습니다. 우리의 대답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신이시며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우리의 힘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능력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감을 선포하며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속에 담겨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신앙의 고백입니다. 단지
주일이기 때문에 습관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와서 어떠한 고백도 드리지 못하고
그냥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세상은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줄 알고 자신의 인생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하나님 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알고 믿기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하나님 세상은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산다고 믿기에 오늘도 멈춤 없이
일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생명이 하나님께 있으며 나의 살고 죽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기에 오늘도
나를 위한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셔서 당신을 인하여 살게 하소서
라는 소망을 안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를 통하여 드리는 우리의 고백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이런 고백이 없는 예배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없는 예배는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주일은 그냥 노는 날이나 쉬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을 위한 날로 사용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