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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5.02 12:16

은혜의 왕 노릇함의 유익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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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cbdJGw7vMt8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521절 말씀에 대하여 입니다. 이 말씀은 자연인 즉 불신자의 상태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가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불신자와 신자 사이의 큰 간극 즉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상상 이상의 차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큰 차이와 비교 불가의 차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단지 현세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현세의 삶에 위안을 주며, 현세의 안락한 삶을 보장받기 위한 자들의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으며, 참된 것을 놓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맛도 보지 못하며, 효력과 효능이 없는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일 뿐임을 알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떠한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효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불신자와 신자의 상태를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521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반복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왕 노릇 한다는 말입니다. 왕 노릇하다 라는 뜻은 왕으로써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가 두 번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는데 두 번이 각기 다른 것들이 왕 노릇한다는 것이며, 동일한 것은 모든 인간들 사이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각기 왕을 섬기고 있으며, 왕 노릇하는 것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예외 없는 모든 인간들의 상태인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스리는 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왕들에 대하여 살펴볼 때에 첫번째 왕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지배력을 가지게 되어 다스리는 왕으로써 죄입니다. 본문에서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고 할 때의 의미가 바로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에 죄는 사망을 통하여 인간들을 지배하며, 다스려 온 것입니다. 이제 둘째 왕을 보면 이 왕이 왕 노릇하게 된 것은 동일하게 인간의 타락 후에 왕으로서 지배력을 가지고 왕 노릇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왕의 다른 점은 첫번째 왕은 범죄하여 타락의 결과로서 자동적으로 모든 인간들에게 왕으로서의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왕 노릇을 하고 있지만 두번째 왕의 경우에는 범죄하여 타락한 후의 자동적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속 언약 속에서 주어진 회복을 위해 세워진 왕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이 두 왕 노릇함에 대하여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521절은 죄가 왕 노릇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다른 특별한 이들은 은혜가 왕 노릇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볼 것은 죄가 왕 노릇할 때의 인간의 상태와 그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은혜가 왕 노릇할 때에 인간의 상태와 그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즉 누구를 섬기는 것이 나에게 더욱 나은 것이며, 옳은 것이며, 최선의 유익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범죄한 아담의 모든 후손인 인류는 모두다 죄가 왕 노릇하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거부할 수 없으며, 배신하거나, 도망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은혜가 왕 노릇하는 자들 또한 자신의 의지나,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로 은혜의 지배 아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은 하나님의 자의적 기뻐하심을 얻을 때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첫째로 죄가 왕 노릇 하는데 있어서 인간이 처한 상태 즉 왕이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리며, 무엇을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죄의 다스림의 큰 특징은 뺏는 것이며, 고갈시키며, 죽게 하며,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범죄한 후 죄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자 인간의 마음에서 분열과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적대시하며, 싸우게 하며, 미움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12절을 보면 이 말씀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 명한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죄의 지배 아래 있게 된 상태의 아담의 변명입니다. 아담은 지금 죄가 왕 노릇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때에 아담은 자신이 먹었습니다 라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라고 자신의 아내 하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비겁함 입니다. 그리고 미워함과 증오 입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어 자신에게로 이끌었을 때 그가 하와를 보고 한 말이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녀는 나라는 의미이며, 그렇기에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죄가 왕 노릇하자 자신의 아내는 더 이상 자신의 아내이자 하와 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빼고 하나님이 주신 여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언제 이 여자를 달라고 했습니까? 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라고 합니다. 원문에는 이 여자 입니다. 내 아내가 아니라 이 여자입니다. 나와 상관 없는 이 여자 입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나와 함께 있는 이 여자라고 하는 것은 죄가 지배할 때에 죄는 사랑을 관계를 빼앗으며, 분열하게 하며, 미워하게 할 뿐만 아니라 왜곡시키며, 삐뚤어지게 바라보고 말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와의 경우를 보면 뱀에게 자신의 잘못을 떠 넘기며, 비난합니다. 또한 하와의 마음에 시기심과 질투와 지배하고자 욕망을 가지게 하여 싸움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16절을 보면 죄의 지배는 여자가 저주를 받아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결코 좋은 것을 주지 않습니다. 질병을 주고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 전에 임신의 고통은 크지 않았으며, 죽을 것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다. 죄의 지배 아래 들어가자 출산은 고통이며, 큰 두려움이 된 것입니다. 또한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그 의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데 죄는 아내로 하여금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질서 아래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세우셨는데 죄의 지배아래에서 죄는 여자의 마음에 남편을 주무르고자 하는 욕망을 지속적으로 주입함으로 이러한 지배아래에서 가정은 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죄는 결코 안식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평안을 주지 않고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즉 죄의 왕 노릇은 인간의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고갈시키고, 탈진하게 하며,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죄는 인생을 망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마약과 술이나 담배등의 몸에 해로운 것들을 하게 함으로 인하여 몸이 망가지고 정신이 망가지고 삶이 망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3-14절에서 탕자의 경우를 보면 아버지의 재산을 받은 둘째 아들이 재물을 보아서 먼 나라에 가서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고 합니다. 죄는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살게 하며, 귀한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게 하며 결국에는 탕진하여 궁핍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죄의 지배의 목적과 이유가 인간의 파멸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의 목적은 인간을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가 되게 하여 함께 파멸에 들어가는 것이며,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합니다. 즉 죄가 이끄는 최종 목적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망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는데 육체의 죽음은 범죄함의 결과로서 인간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둘째로 사망은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의미하며, 성경은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계시록 2014-15절을 보면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하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은 죄가 이끄는 대로 살다가 죄의 최종 목적인 사망에 이르게 하여 지옥에 가게 하며, 결국 세상 종말의 때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이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죄는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인간을 마음을 고갈시키며, 삶을 파괴하며, 불행하게 하다가 결국에는 죽게 하며, 지옥에 가게하며, 결국에는 불못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왕 노릇은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인색한 것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족함이 없게 하며, 값없이 주며, 풍성하게 준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24절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 없이 주는 것이며, 이것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며 주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교통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결코 주리지 않게 하며, 목마르지 않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즉 은혜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거져주며 채우며 풍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가 하는 거짓 말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아주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고, 힘들고 어려운 길이며,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고약한 것이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죄의 달콤한 유혹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처음에는 즐거움과 쾌락으로 다가오지만 그 후에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도록 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죄는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줄 수 없으며,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그 어떠한 영원한 것을 죄는 보장해 줄 수가 없습니다. 행복과 기쁨을 보장하지 못하며, 즐거움과 만족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들로 잠시 현혹하며, 줄 수 있는 것처럼 속삭이지만 결코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언제가 사라지며, 자신이 죽는 날에 모두다 보이는 것들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2-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 때에 함께 멸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불에 타지 않게 하며,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는 심판과 형벌을 약속하지만 은혜는 영생과 천국을 약속하는 영원한 행복과 평안을 약속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내가 은혜 아래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첫째로 은혜 아래 있으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7-8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이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자로 죄가 왕 노릇하는 자입니다 이 자는 하나님과 원수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또한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과 날마다 화목하기 위한 시간을 가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기를 기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510절을 보면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라고 합니다. 은혜는 우리를 그분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게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합니다. 또한 친히 온전하게 하며, 굳건하게 하며 강하게 하며, 터를 견고하게 합니다. 즉 나에게 있어서 내 신앙과 믿음이 은혜의 지배 아래 있으면 고난 가운데서도 온전하기 위하여 애를 쓰며, 굳건할 방도를 찾아 말씀으로 자신을 더욱 굳건하게 하며, 강하게 하며, 터를 견고하게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러한 방식으로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은혜는 에베소서 527절을 보면 은혜는 그의 지배를 받는 자들을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며,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일로 다스립니다. 은혜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게 하여 지배력을 발휘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성도 섬기는 일을 하게 하여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내게 있는가? 이러한 다스림이 내게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밖에 없습니다. 죄가 왕 노릇하는 사람과 은혜가 왕 노릇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누구의 지배를 받기를 원하며 누구의 지배 아래 있습니까? 은혜의 지배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찾으셔야 합니다. 은혜의 지배 아래 있어야 행복함을 알고 은혜의 지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의 지배력이 내 안에 점점 커지도록 은혜를 왕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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