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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6.06 11:27

사단과 죄의 연관성

YC
조회 수 14254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aS7vG2ZwVxQ


과거 한동안 한국 교회에 잘못된 마귀론이 유행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이론의 중심에는 불신자는 죽으면 귀신이 되며, 사람이 병이 들거나, 다치거나,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모든 일들은 마귀와 귀신들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가 아파도, 머리가 아파도 배가 아프게 하는 귀신을 물리쳐야 하고 머리를 아프게 하는 귀신을 쫓아 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성경과 전혀 관련이 없는 터무니 없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이단적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러한 비성경적이며, 반성경적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유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마귀에 대한 정보와 이해의 결핍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또한 신자들 가운데 앞의 잘못된 마귀론을 믿거나 따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신자들의 믿음의 근저에 모든 일을 마귀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죄의 문제에 대하여 더욱 심각한 왜곡이 있습니다. 일부 어떤 이들은 죄의 발생과 활동의 문제를 모두 마귀나 또는 귀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장이나 믿음은 죄를 개인의 문제에서 벗어나 마귀와 그의 추종세력에게 돌림으로 죄를 지은 자신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죄를 인간과 분리시키며, 오히려 인간을 마귀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림으로 의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왜곡이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은 회개의 필요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의 모든 책임과 의무를 스스로 벗어 던지게 하여 죄 없다고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믿음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먼저 성경은 마귀가 인간에게 큰 영향을 미치도록 간섭하며 역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의 죄에 대한 원인이 마귀의 역사로 말미암으며 마귀가 일으키는 문제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은 죄된 본성을 가진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 1절을 보면 [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As for you, you were dead in your transgressions and sins,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셨는데 그분은 우리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죽게 한 허물과 죄는 마귀가 우리 안에서 우리의 동의가 없거나 또는 그 스스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바울은 우리를 죽게 한 허물과 죄의 소유권을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허물과 죄는 인간 스스로가 지은 죄의 결과이며 그들이 지은 죄의 대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나 허물을 마귀에게 돌리어 스스로 죄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며 회개를 회피할 기회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죄의 모든 책임은 죄를 지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비로 그 죄가 사단의 부추김과 충동의 결과로 발생된 것일 지라도 인간은 죄에 대한 책임과 대가에 대하여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2 2절을 보면 [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신자들 안에 일어나는 죄의 원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의 책임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예전에 이 세상 풍조를 따랐고 또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합니다. 원문에 이 단어들은 동사가 아닌 전치사 입니다. 주 동사는 그 가운데 행하여 라는 단어입니다. 이 동사가 능동형으로 과거에 에베소 교인들은 스스로가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일차적 원인이 인간 안에 존재하는 죄의 세력이며 그렇기에 그 책임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 본인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 3절은 이 부분을 좀더 명확하게 합니다. [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All of us also lived among them at one time, gratifying the cravings of our flesh and following its desires and thoughts. Like the rest, we were by nature deserving of wrath. 바울은 여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였다고 합니다. 마귀의 욕심을 따라가 아니며 마귀의 마음의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마음이 죄에 이끌리게 되고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러한 상태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단과 죄의 관계의 문제에 대하여 좀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사단이 인간이 일으키는 죄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누가복음 22:3절을 보면 [ 22:3]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Then Satan entered Judas, called Iscariot, one of the Twelve.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팔았던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파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또 다른 본문인 요한 복음 13 2절을 보면 [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The evening meal was in progress, and the devil had already prompted Judas, the son of Simon Iscariot, to betray Jesus. 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보면 마치 유다는 억울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판 것이 유다가 아니라 사단의 역사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이 유다 자신인가 아니면 사단의 역사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며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4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팔 유다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 14: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The Son of Man will go just as it is written about him. But woe to that man who betrays the Son of Man! It would be better for him if he had not been born." 예수님께서는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라리 나지 않았으며 그에게 더 좋을 뻔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가리키는 것은 예수님의 판 죄에 대한 책임이 유다 개인에게 있음을 명확히 하시는 것입니다. 사단이 비록 유다에게 생각을 집어 넣었어도, 유다에게 들어갔어도 예수님을 판 일에 대한 책임이 유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주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2:6절을 보면 [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He did not say this because he cared about the poor but because he was a thief; as keeper of the money bag, he used to help himself to what was put into it. 라고 하는데 이 구절은 유다에 대한 평가 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이며 죄와 사단의 관계는 어떠한 관계인가 하는 부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위의 구절은 도유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본문입니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것에 대하여 가룟 유다가 비난을 하며 이 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이러한 유다의 말에 대하여 요한은 유다가 왜 그러한 말을 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그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는 도둑이라고 합니다. 그는 돈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훔쳐 사용하는 자였습니다.

        이러한 유다에 대한 평가는 사도행전에서 그와 함께한 사도들에 의해서도 입증이 되는데 사도행전 1 18절을 보면 [ 1: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With the payment he received for his wickedness, Judas bought a field; there he fell headlong, his body burst open and all his intestines spilled out. 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베드로의 말로 그는 유다에 대하여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산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그는 탐욕에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유다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과 죄에 관련된 다른 구절들을 통합하여 생각할 때에 죄와 사단의 관계는 좀더 명확해 집니다.

        죄는 타락한 인간 본성 가운데 자리 하고 있으며 세력으로 실제하고 있는 힘입니다. 유다 안에서 유다를 지배하는 죄는 유다의 마음에 탐욕을 일으켰으며 그로 눈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다의 탐욕은 사단에게 있어서 그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허락했으며 사단은 유다의 탐욕을 더욱 부추기며 충동하여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파는 일을 행하게 한 것입니다. 사단은 유다의 탐욕에 불을 지피는 조력자요 동반자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사단만의 역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통하여 사단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죄의 세력과 결탁하는 일을 하며 이 일은 충동이나 부추김으로 죄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여 죄의 세력을 더욱 강하게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부패한 심령과 그 안에 있는 죄와 사단은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자는 내부에 존재하는 적과 외부에 존재하는 적 이 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2:26절을 보면 [딤후 2: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and that they will come to their senses and escape from the trap of the devil, who has taken them captive to do his will. 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들로 깨어 있으라고 하는데 이유는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마귀는 올무를 가지고 옭아 매려고 하는 자입니다. 마귀가 올가미로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심입니다. 이러한 욕심은 사단의 올무가 되어 인간을 죄의 속박에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체로 선한 존재인데 사단이 그 가운데 욕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 안에 부패한 마음은 그 자체로 죄가 활동할 수는 영역이 되고 그 안에 일어나는 각종 탐욕과 욕심에 죄가 참여하고 사단은 그 죄가 더욱 힘을 얻어 지배력을 얻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 스스로는 결코 죄와 무관할 수가 없는 것이며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사단에게로 전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와 사단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에 사단이 죄와 관계가 있으며 죄에 관하여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사단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인의 경우에는 타락한 그들의 본성 자체가 죄의 지배아래 있으며 그러한 죄성은 사단이 원하는 데로 이끌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으로 사단의 지배를 받는 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 4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You belong to your father, the devil, and you want to carry out your father's desires. He was a murderer from the beginning, not holding to the truth, for there is no truth in him. When he lies, he speaks his native language, for he is a liar and the father of lies. 이 구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다 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마귀의 자식인 이유는 마귀의 욕심에 따라 그들 스스로가 좋아하며 원하여서 따라 행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신자의 경우에는 마귀가 더 이상 그들의 아비가 아니게 됩니다. 이제 그들의 아버지가 바뀐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한량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의 적용의 결과로 신자는 섬기는 아버지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로 말미암아 사단은 유혹의 기회를 잡으며 또한 다시 지배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신자 안을 호시 탐탐 노리며 기회를 엿보는 자입니다. 사단은 신자 안의 죄와 결합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죄의 힘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정욕이 득세할 때를 노립니다.

        신자 안에서 죄와 사단과의 관계는 신자가 자신의 영혼을 위한 임무와 책임을 게을리 할 경우 죄에게 그 힘과 능력을 떨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일어난 죄성에 기름을 붓고 더욱 기승을 부리며 활동하도록 역사하는 일은 사단에 의해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사단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 자신의 본성과 체질 또는 어떠한 죄가 득세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혼에 대한 죄의 힘이 강하여질 경우에는 확실히 사단이 준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의 힘은 모든 정욕에 대하여 동일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본성과 다른 어떤 특별한 정욕이 충동되어지고 자극되어 광기를 일으킨다면 그것은 분명 사단이 시험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자 안에서 어떤 정욕이 자극 되고 충동되어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죄가 힘을 얻고 활동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단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죄와 항상 함께 움직이며 죄를 통하여 역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시록에서 사단의 멸망과 죄가 사라짐이 함께 일어나는 사건으로 묘사되는 것입니다. 신자 안에는 여전히 죄와 또한 그 죄와 함께 역사하는 사단의 노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신자가 여전히 깨어 주의하고 영혼을 위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 유리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5 18절을 보면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We know that anyone born of God does not continue to sin; the One who was born of God keeps them safe, and the evil one cannot harm them.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는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그래서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만지지도란 표현은 붙잡아 끌어 내리는 일로 사단은 신자를 붙잡을 수도 없으며 옭아 매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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