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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5.09 10:12

하나님이 내신 혼인

YC
조회 수 2492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OuzN1wk47JA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왜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며 만드신 후에 서로 따로 지내지 아니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한 몸이 되게 하셨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자가 갖는 결혼이라는 의미와 신자가 갖는 결혼에 대한 의미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다름이라는 것을 많은 경우의 신자들은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합니다. 불신자에게 있어서 결혼은 서로 다른 남여가 서로에게 끌려서 함께 평생을 살려는 마음에 따른 의지적 결단으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결합하여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 간의 끌림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랑이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자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끌림은 불신자와 같으나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맺어준 신적 작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결혼을 한 후에 예수님을 만나신 분들은 해당이 되지 않겠지만 결혼 전에 신앙 생활을 하셨던 분들은 결혼에 대하여 진지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이라는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준비하신 배필과의 만남이라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의 마음 속에는 은연중에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결국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는 신적 작정속에 있는가 아니면 내 개인의 취향과 사랑에 근거하고 있는 가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솔직하게 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물으면 신적인 작정도 허울좋은 신앙적 미사여구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한 것이 사실입니다. 결혼을 신앙이나 믿음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눈에 맞고 자기 취향에 맞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합니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신앙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 적령기의 신자라는 청년들이 가지는 비신앙적 결혼관입니다. 결과적으로 신자의 결혼관과 비 신자의 결혼관은 같은 것입니다. 다 자기 좋은 사람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결혼이 자기 좋은 사람과 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그리고 왜 부부로 맺어 주셔서 한 몸이 되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결혼의 목적을 가질 수 있으며 그 목적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결혼에 대한 인식은 서로 간의 사랑하기 때문이며 서로 간의 사랑이 결혼의 중요한 목적이요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결혼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례시에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서로 화목할 것을 주문하며 서로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결혼이라는 것이 사랑이나 화목함을 등한시 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요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러한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왜 남자와 여자를 주셨으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주셨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1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 혼자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좋지 못하다는 뜻을 외롭거나 쓸쓸하다는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상상이 본문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홀로 있었고 그에게는 아직 아무 것도 없었다. 즉 우리가 아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아담은 외로왔을 것이다라는 전제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는 여자라는 존재가 있는 현재적 의미로써의 접근이지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을 당시의 상황적 접근에서는 여자라는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는 아직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좋지 못하니 라는 단어는 아담의 입자에서의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좋지 못하였다고 말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계속해서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4절을 보면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또 창세기 110절을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창세기 112절을 보면 여기에서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섯째날에는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창세기 131절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라고 합니다. 모든 지으신 것을 보았을 때에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21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것에 대한 세부적은 사항들을 다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여자를 만드시는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자는 언제 지으심을 받았는가 하면 여섯째 날입니다. 왜냐하면 제 칠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안식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2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신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셨습니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는 언제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까? 제 육일입니다.

   창세기 127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언제 만드셨는가에 대하여 창세기 131절을 보면 [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God saw all that he had made, and it was very good.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sixth day.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여섯째 날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에 창세기 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여섯번째 날에 있던 내용을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시 창세기 218절을 보면 [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그럼 여기에서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 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 보시기에 입니까? 누구의 마음과 뜻에 좋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한 것이 좋음 입니다. 이 단어는 토브라는 히브리어 입니다. 좋음이란 하나님 편에서의 좋음입니다. 이 단어는 선악이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함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을 때 좋은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에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했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뭔가 부족하며 결핍되어 있는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즉 아담 편에서의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의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결혼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 편에서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좋으신 것이며 하나님이 의도하신 어떤 뜻을 성취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혼은 결혼 당사자의 행복이나 화목이나 즐거움이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일차적 의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계획과 의도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바로 결혼이라는 제도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얼마나 우리가 결혼이라는 것을 자기 만족이나 행복이나 기쁨이나 평안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바른 이해의 부족으로 결혼이 서로 간의 행복함이 목적이 되고 화목하며 즐거움을 누리는 곳으로 전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좀더 이 부분을 증명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담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18절 하반절에 보면 돕는 배필을 지으시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혼자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성취할 수 없기에 돕는 배필을 지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그를 위하여 돕는 조력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결혼의 목적이 사람 간의 사랑이나 화목이나 기쁨이라면 이 돕는 배필을 분명히 아담을 즐겁게 하며 아담과 짝하여 그를 행복하게 하며 연합하여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형태의 돕는 배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하나님이 단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주신 제도라는 전제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결혼 제도는 인간의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서의 돕는 배필을 아담 만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담과 짝을 이루어 함께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성취하는 조력자인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이해가 바른 것인가 하면 그 다음 구절부터 이어지는 내용 때문에 더욱 확실합니다. 우리는 돕는 배필이 꼭 남자니까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 속에 이미 남자의 짝은 여자라는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한번도 여자라는 존재를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그의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각종 공중의 새를 지으시고 아담에게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름 지으시는가 보십니다. 18절과 19절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을 지으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음절인 창세기 219절을 보면 [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Now the Lord God had formed out of the ground all the wild animals and all the birds in the sky. He brought them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name them; and whatever the man called each living creature, that was its name. 갑자기 들짐승과 새들을 지으시고 그들을 아담에게로 이끌고 오십니다. 우리는 이것이 단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물의 이름을 짓게 하는 내용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시는데 동물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왜입니까? 다시 창세기 218절을 보면 [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18절에 돕는 배필을 지으시라는 말씀에서 지으리시라는 단어는 만들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지만 다른 의미로는 임명하다, 제정하다는 뜻으로 번역됩니다. 임명하다라는 뜻으로 번역을 하게 되면 그 다음 구절이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짐승과 새들을 아담에게 데리고 오는 것이 그 가운데서 아담의 돕는 배필을 임명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20절의 내용 때문입니다. 창세기 220절을 보면 [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So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livestock, the birds in the sky and all the wild animals. But for Adam no suitable helper was found. 마지막 구절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입니다.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에는 여자라고 이름을 칭할 아담의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자라는 말과 여자라는 말이 많이 다릅니다. 히브리어에서 여자라는 말이 어디서 나온지 아십니까? 남자라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창세기 223절을 보면 [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The man said, "This is now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she shall be called 'woman,' for she was taken out of man." 아담이 하와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을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하였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아담은 너무나 기뻐서 외칩니다. 자신과 같은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합니다. 여자라는 말은 남자에게서 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라고 하는데 히브리어로 여자는 이솨입니다. 그리고 남자는 이쉬입니다. 남자라는 단어에 여성형 어미가 붙은 것이 여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자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다시 창세기 220절을 보면 [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So the man gave names to all the livestock, the birds in the sky and all the wild animals. But for Adam no suitable helper was found. 20절에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는 말은 18절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짐승과 공중의 새들중에서 아담의 배필을 찾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없으므로라는 단어가 마짜라는 말인데 발견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아담은 짐승과 새들 가운데서 자신의 짝인 여자라는 이름을 붙여줄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 말은 돕는 배필이 꼭 사람인 여자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는 하나님의 뜻을 함께 이루어 나가는 일에 협력하며 도울 수 있는 조력자를 찾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짐승들과 새들 가운데서는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행이 바다의 물고기는 제외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육지에 사는 아담과 함께 하여 일을 도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서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유와 목적은 둘의 행복이 우선이 아닙니다. 둘의 사랑이 우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임무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128절을 보면 [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God blessed them and said to them, "Be fruitful and increase in number;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Rule over the fish in the sea and the birds in the sky and over every living creature that moves on the ground." 하나님의 대리자로써 이 땅을 다스리며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에 아담과 하와는 협력하며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타락 후 부부의 관계는 이제 협력의 관계가 아니라 다툼과 싸움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제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는 서로가 위에 서기 위한 지배의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을 바르게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의 존재 목적은 우리 자신들의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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