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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1bcOF3-YbRc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으로 달란트의 비유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비유란 비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여기서 수사법이란 말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언어 사용법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듣는 자들의 마음을 설득하기 위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잘 표현하시고 이해하도록 비유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비유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거나 또는 오해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비유의 모든 단어들이 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유는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처음과 마지막에 그 의미들을 담아 내며, 핵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달란트의 비유라는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달란트에 초점을 맞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한 종들에게 초점이 맞추어 지고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하는가 하는 것을 주목하다 보면 이 비유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의 시작을 보면 마태복음 2514절입니다. 마태복음 2514절을 보면 달란트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되는데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다고 합니다. 여기서 같다는 것은 천국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와 같다고 할 때에 어떤 것이 핵심입니까? 어떤 것이 이와 같은 것입니까? 종들입니까? 자기 소유를 맡김입니까?

        영어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이 좀더 명확한데 NIV 버전을 보면 다시 말하는데 천국은 마치 한 사람과 같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 또한 이 사람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종들을 부른 사람이고 그리고 맡기 사람인데 자신의 부를 그의 종들에게 맡긴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즉 여기서 핵심은 누구인가 하면 한 사람입니다. 그는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입니다. 그때에 자신의 소유를 자신을 불러 그들에게 맡기고 떠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이 비유의 핵심은 누구인가 하면 종들이 아니라 긴 여행을 떠나는 주인입니다. 이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 이 비유에서 천국이 마치 여행을 떠나는 한 사람으로 비유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이 비유가 주어진 상황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비유가 주어진 배경을 보면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첫째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 비유는 세상의 끝인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 속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의 시작점을 찾아 보면 마태복음 243절에서 이러한 말씀의 배경을 보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묻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는가 하는 것과 주님께서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주의 임하심이라는 단어입니다. 임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파루시아 인데 이 말은 주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즉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리고 세상의 끝 날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를 알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다시 달란트의 비유로 돌아와서 이 비유의 배경은 우리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 날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514절에서 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라고 할 때에 즉 여행을 떠날 때에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면 바로 제자들을 떠나 하늘로 올리워 가실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행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또한 의미하며, 자신의 소유를 맡겼다는 것은 그것을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 한 사람의 행위 속에서 이 사람 즉 우리 주님으로 비유되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이 사람은 언젠가 다시 오실 분입니다. 둘째로 이 사람은 자신의 종들을 믿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종들을 신뢰하며,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맡기며,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소유라고 할 때에 이것들은 자신의 것입니다. 다음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는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태복음 2515절을 보면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주인은 자신의 종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을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신뢰하여 자신의 것을 기꺼이 그리고 신뢰함으로 우리에게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그분은 우리를 너무 잘 알고 계시며, 우리를 이해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이야기를 보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에 대하여 이들이 가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 받는 자는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받은 자는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달란트를 받은 자입니다. 마태복음 2518절을 보면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지나 주인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음절을 보면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결산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주님이 오실 때에 반드시 각기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일들을 위임하셨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을 위임하셨습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을 위임 받았고 세상에서는 신자의 삶을 위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행실을 따져 보실 것입니다.

        돌아온 주인에게 각각 보고를 합니다 먼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의 경우에 마태복음 2520-21절을 보면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주인의 말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주인은 잘하였다고 칭찬을 합니다. 이 종에게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명칭을 부여 합니다. 그리고 네게 많은 것을 맡길 것이며,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합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한다는 말은 같은 식탁에 앉는 다는 말이며, 이제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에게 있어서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에게 영광스러운 자리가 부여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자 또한 동일한 칭찬과 동일한 대우가 주어지게 됩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자와 그에 대한 주인의 반응을 보면 마태복음 2524-25절을 보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굳은 이란 혹독하고 냉혹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알므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다고 합니다. 종은 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고 있는데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자, 헤치지 즉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자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두려워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주인의 반응을 보면 한 달란트를 받은 자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합니다. 이 종은 게으름의 악을 행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혹독하고 냉혹한 자라고 알았다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 즉 이자를 줄 수 있는 자들에게 맡겼다고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인이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이 종도 알았을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은행에 맡겨서 그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은 그것 조차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합니다. 이 종이 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인은 각 종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에 더한 요구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각 종들에 맞게 자신의 소유를 맡긴 것입니다. 이 말은 종들을 향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의 신뢰에 배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인이 악한 자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자신을 신뢰하며, 자신의 것을 나누며, 그것으로 종들로 하여금 자신의 식탁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의 자리에 초청하는 것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인의 것에 손해를 끼쳤던 것입니다. 그는 주인을 미워하며,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기 위해 자신도 알고 있었던 은행에라도 맡겨 이자라도 받게 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에서 우리는 주인의 기대와 바람을 보게 됩니다. 이 주인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신뢰와 기대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경우 이들은 주인이 자신에게 나누어준 주인의 소유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고자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왜 착하고 충성된 종들인가 하면 이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인이 자신들에게 보인 신뢰와 사랑에 이들은 온 힘을 다하여 주인에게 유익을 끼치고자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인이 돌아왔을 때에 한 말을 보면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내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행한 일에 대하여 어떠한 것을 주장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들은 주인이 어떠한 분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귀중한 소유를 나에게 맡기시는 나를 믿으시며, 신뢰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분은 내게 좋은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주인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주인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내가 해야할 전부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유익을 얻게 한 것으로 만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주인은 어떠한 주인인가 하면 자신의 종들은 칭찬할 뿐만 아니라 이 종들을 자신의 자리에 함께 앉게 하시는 분이시며, 그들은 높이는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오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을 나쁜 사람으로 여기며, 주인의 것에 손해를 가하는 일을 하면서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혹시 손해를 볼까봐 땅에 묻어 둔 것을 나쁘다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첫째로 은행에 이자를 받게 하는 일은 손해를 볼 수 없습니다. 둘째로 땅에 묻어 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이 종의 행위는 자신에게 여행을 떠나면 한 달란트를 맡기는 주인의 목적과 의도에 반역함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맡기다는 말은 가지고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으로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함으로 충성되이 일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주인의 의도가 담겨 있으며, 주인과 종의 계약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주인과의 계약을 스스로 깨버렸으며, 멸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악하고 게으른 종인 것입니다.

        셋째로는 이 주인은 큰 것을 요구하는 주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약 이 종이 주인으로 부터 받은 한 달란트를 은행에 맡겨 이자를 받게 하였다면 그래서 주인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행하였다면 주인은 이 종을 책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종은 그것 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에 따라 일하도록 책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통하여 받은 직분이건 가정의 일이건 사회에서 일이건 이 모든 일을 통하여 그분의 제자된 자들은 주님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그분 앞에서 우리의 행실에 대한 결산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그분이 맡기신 일에 대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들로 발견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인생이라는 시간을 사용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 주님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박하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말라기서 317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끼신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우리를 아끼십니다. 여기서 아낀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우리의 부족한 것을 눈감아 주시며, 온전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여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불충하게 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우리 주님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하거나,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지나친 염려나 두려움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아끼시는 분, 즉 우리의 부족함이나 모자라는 것 조차도 이해하시며, 용납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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