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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3.21 10:16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

YC
조회 수 4408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nl4w5xJtmFI


오랜 동안 교회에서 거짓말인데도 불구하고 믿고 있고 은연중에 동의하고 있으며, 신앙의 동기로 이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행위에 따라 보상하시는데 어떤 이에게는 황금 면류관을 어떤 이에게는 은 면류관을 또 어떤 이에게는 동 면류관을 그리고 형편없는 신앙 생활을 한 이들 즉 교회에 헌금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으며, 희생도 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개털 모자를 주신다는 해괴한 소문입니다. 이러한 엉터리 말이 마치 성경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양 오래 전부터 거짓 목사들에 의해서 전해지고 가르쳐져 왔습니다. 비록 이러한 말을 믿지 않는다 해도 성경이 상급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은연중에 교회 봉사와 헌신을 함으로 자신이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잘되는 복을 받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먼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성경이 많은 곳에서 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계시록 2212절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내가 줄 상이 내게 있다는 말 즉 주님께서 상을 주실 것이며, 이 상은 각 사람이 그들이 행한 대로 주시는 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표면적이고, 부분적인 것만 따와서 주님께서는 오실 때에 상을 가지고 오시며, 그 상은 각 사람이 어떻게 행하였는가에 따라 그 상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상을 받을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듣는 이들은 성경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가를 따져보지 않고, 또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도 노력하지도 않기 때문에 단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이렇다 라는 목사의 말만 믿고 자신은 순종한다고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행한 대로 상을 받게 되기 때문에 더 많이 헌금하는 방식으로 또한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는 방식으로 마치 주고 받고 하는 인간적인 사고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 또한 그러실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본문의 이해에 앞서서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털 모자에 대한 정리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 받게 될 면류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서 후서 48절을 보면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합니다. 의의 면류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나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의의 면류관에 대하여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이 내게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주시다는 말의 의미 속에서 상을 수여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상으로 주실 것인데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시는 의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은 상으로 받게 되는데 주시는 분이 재판장이며, 그분은 의로우신 분으로 그분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은 의롭다 인정받는 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은 재판정에서 우리가 죄인으로 정죄되지 않고 의롭다함을 받게 되는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고보서 112절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생명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누가 받는가 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즉 주님을 믿는 자들이 받게 되는 구원을 증표로서 주어지는 면류관입니다.

        세번째로 베드로전서 53-4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관 즉 면류관을 말하고 있는데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이라고 할 때에 이것에 대한 부연 설명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사라지지 않을 영광의 면류관으로 온전한 구원함을 얻은 가운데 영광스러운 주님의 거룩한 몸과 같이 시들지 않을 몸에 참여함과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한 자의 상징됨으로 영광의 면류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성경의 다른 구절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받게 될 면류관에 차별이 있다는 구절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즉 성경에 황금 면류관, 은 면류관, 동 면류관, 개털 모자 같은 말은 전혀 없으며, 그러한 구분 또한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구절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은 오직 구원의 증표이자 확증으로서 면류관이 상용되고 있으며, 이 또한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비유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는 말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합시다. 계시록 2212절을 보면 이 말씀을 좀더 원문의 의미를 살려 해석하면 내가 속히 오는 이유는 내가 네게 상을 주기 위해서이며, 이 상은 내게 있다. 내가 각 사람에게 그들의 행위에 따라서 주는 상이다 라고 번역됩니다. 강조점은 주님이 오시는 이유에 대하여 입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시고 싶어하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상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뒤에 있는 각 사람이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는 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앞에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뒤에 각 사람에게 줄 상이라는 말이 자신들이 원하는 물질적인 것들이 되는 것이며,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 것 되는 것입니다. 사라지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아시는 주님이 왜 영원하지 않은 것을 상으로 주실까 의문해 봐야 합니다. 잠시 잠깐 후면 사라질 것을 영원하신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내 영혼의 유익함을 원하시는 분이 그것을 귀하다고 상으로 주실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부모가 결코 자식에게 지금 당장 좋다고 해로운 것을 주지 않습니다. 건강에 해로운 음식을 자식에게 권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알러지가 심한 아이에게 그것을 자극하는 음식을 결코 이쁘다고, 착하다고, 말 잘 듣는 다고 주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주님이라면 영원한 것을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상을 주시기 위해 속히 오시며, 그 상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라면 영생이 틀림이 없는 것이며, 우리의 몸의 온전한 구원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인 계시록 22:13-14절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보면 주님은 자신이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의 첫 글자이며,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라고 합니다. 생명나무와 문들이 상징하는 것은 구원입니다. 이 구원에 참여할 권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에 대하여 다음절이 2215절을 보면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인 것입니다. 즉 계시록 2212절 말씀에서 내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라는 것은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로 자신의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사는 자들이며, 주님이 주시는 상은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확증을 주는 또 다른 말씀을 보면 로마서 26-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보응하심 즉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음을 구하며 살았기 때문에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음에 참여하는 영생으로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오직 당을 지어서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즉 심판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이 우리의 상급이며, 우리가 받게 될 상이라고 할 때에 어떤 이들은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얻었는데 그렇다면 상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다른 무엇인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좀더 생각해 보는 이들은 구원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을 때에 성령을 통하여 주신 것인데 성경은 상급에 대하여 앞으로 받을 것에 대하여 주님이 주실 것으로 미래형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이미 받은 것과 앞으로 받을 것에 대한 상충적인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성경의 증언을 종합할 때에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하여 세 개의 각기 다른 시제를 사용하여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문장의 의미로서 온전하게 설명해주는 말씀이 우리 주님에 의해서 주어졌는데 요한복음 524절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라는 말을 즉 아멘 아멘 레고 휘민 에서 아멘 아멘을 반복하는 이유는 지금 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신비로운 말씀이며,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시는 말씀이 참됨을 강조하시며,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시기 위하여 반복하십니다.

        그 내용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여기에 각기 다른 시제가 문맥적으로 포함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영생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현재형으로 지금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심판은 지금이 아니라 한 인생이 끝나는 날이나 또는 주님이 오시는 날에 있을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미래적인 것입니다. 셋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구원을 얻음이 과거에 믿을 때에 일어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성경이 구원에 대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로 이야기 하는 것은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인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상입니다. 에베소서 28절을 보면 에베소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NIV에서는 이것이 믿음을 가리키고 있음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지시 대명사인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믿음과 그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 또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또한 구원은 현재적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상입니다. 베드로후서 13절을 보면 그의 신기한 능력 즉 우리 주님의 신적인 능력이 우리에게 주는데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 우리에게 필요한 무엇을 위해서 경건한 삶 즉 구원을 얻은 자로서 사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주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경건함의 비밀은 우리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우리에게 그분의 신적 능력을 통하여 주어지고 있기에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지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우리가 여전히 어떠한 의심에 빠져 미끄러지지 않고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살살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주님이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보상을 통하여 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지금도 구원의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있었던 바울은 빌립보서 314절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4절을 보면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데 푯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쫓아 달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름의 상이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그 부르심이 상이며, 이 상은 그리스도 안에 부르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얻는 상이며, 이 상은 이 후에 받게 될 상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온전한 구원의 상인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심이 즉 구원을 위해 부르심이 얼마나 큰 상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값으로 살 수 없으며,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상을 우리는 받았고 받고 있고 앞으로 온전한 구원으로 새로운 죽지 않을 몸과 썩지 않을 몸, 그리고 죄를 지을 수 없는 몸, 병들지 않는 몸, 애통하는 것이 없는 삶으로 영생의 복락의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부르심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디모데후서 19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예전 개역한글 성경은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즉 거룩한 삶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직 자기의 뜻에 의해서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만큼 큰 어떠한 상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닮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 달려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 사명을 받은 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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