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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2.02.14 10:01

맏아들 눅 15장 25절부터 32절까지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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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2SPW2ZIHoCU


오늘은 탕자의 비유 마지막 시간입니다. 25절을 보면 맏아들은 밭에서 돌아오면서 집으로부터 들려오는 노래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절인 누가복음 1526절을 보면 그는 오던 길을 멈춥니다. 그리고 한 종을 불러 묻습니다. 무슨 일인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종이 대답합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임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합니다. 이에 다음 구절인 28절을 보면 이 일에 대한 첫째 아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가 노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노함을 인하여 들어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왜 이 첫째 아들은 노한 것일까요? 무엇이 이 첫째 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며 화가 나게 만든 것일까요?

        아버지와의 대화 속에서 큰 아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누가복음 1529-30절을 보면 하나는 몇 해 동안 나는 아버지를 섬겨왔고 아버지의 말씀에 한번도 불순종하지 않았는데 불구하고 한번도 나에게는 염소 한 마라도 주어 내 친구들과 함께 즐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나는 그런데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낭비한 이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잔치에 들어갈 수 없고 분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큰 아들이 말한 것은 거짓됨이나 보탬이 없이 모두 사실입니다. 그는 지금도 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그의 말처럼 그는 아버지에게 불순종하지 않는 아들이었습니다. 둘째와 첫째 아들은 아주 대조적입니다. 모든 일에 성실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열심을 내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첫째 아들은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그의 분냄은 어찌 보면 옳은 것 같습니다.

        성경은 첫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다시 누가복음 1528절을 보면 첫째 아들은 너무나 분이 나서 잔치에 들어가지 않고 거부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밖으로 나와 아들을 권합니다. 여기서 권하다는 말은 간절히 부탁한다는 의미입니다. 큰 아들이 노를 내며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은 당시의 문화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버지를 거부하거나 대놓고 대드는 행위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죄입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아버지는 이 첫째 아들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간절히 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들어가서 잔치에 참여하라고 말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첫째 아들이 분내며 욕하는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됩니다. 첫째 아들이 아버지를 하대하며 존중하지 않는 모습은 또 다시 나타납니다. 29-30절을 다시 보면 한글 성경에는 29절에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뭐라고 부르냐면 당신입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당신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타인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양 문화권에서 엄격히 금기시됩니다. 버릇없고 예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이 아들이 결코 착한 아들이 아님을 상기시켜 줍니다. 또한 자신의 동생을 이 아들이라고 표현함으로 그는 동생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라고 말함으로 자신과 상관없는 자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둘째 아들 보다 더욱 못된 아들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그가 얼마나 분노에 휩싸여 있는지를 잘 드러냅니다. 그의 분노의 원인은 상실감입니다. 나는 죽도록 고생했는데 내 보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살았는데 나름대로 순종하며 살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얻은 것이 없는 것 같은 데서 오는 상실감입니다. 이것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섬긴 후에 오는 상실감입니다. 나름 대로 열심히 수고하며 애를 쓰며 노력했는데 스스로는 최선을 다해 죽을 힘을 다해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썼고 죄를 짓고 않으려고 경건 되게 살아 왔는데 자신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기도하지도 않고 더 신앙적이지도 않고 더 믿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더 순종하지도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 보다 더 나아지는 것을 볼 때 정말 확 깨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나의 수고가 고생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절망감과 상실감에 따른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마치 첫째 아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31절에 이미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5 31절을 보면 아버지는 첫째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너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의 시작에서 둘째 아들이 자신의 몫을 얻을 때 첫째 아들 또한 자신의 몫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첫째 아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깨닫게 합니다. 내 것은 모두 네 것이야 아들아 모든 것이 네 것이란다. 오늘날 우리가 수고한 후에 오는 상실감은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이 비교의식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비교의식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은혜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자꾸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려는 경향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으며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아들의 문제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9절을 보면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섬기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원어적 의미는 be a slave 입니다. 노예가 되다 입니다. 첫째 아들의 말은 다시 해석하면 나는 여러 해 동안 당신의 노예가 되어 죽도록 고생하며 살아왔다는 의미입니다. 충격은 이 첫째 아들이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를 노예로 만들었습니까? 그의 아버지가 그를 노예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노예로 스스로를 생각한 것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31절을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첫째 아들을 부를 때 애야 하고 부릅니다. 헬라어에 아들은 휘오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아 라고 부르지 않고 테크논이라는 더욱 친숙하고 부드러운 단어를 사용하여 아들을 부릅니다. 애야 라는 단어는 스스로를 노예로 여기는 첫째 아들에게 너는 노예가 아니라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는 동시에 아버지는 여전히 첫째 아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이 아버지는 한번도 자신의 첫째 아들을 노예로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첫째 아들 스스로가 자신을 노예로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노예의 마음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과 아들의 마음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노예의 마음으로 신앙 생활 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사랑이 그 모든 일에 기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예에게 주인은 늘 자신의 두려움이자 복종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의 마음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자발적 순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 생활은 자발적 순종입니까? 아니면 사랑이 없는 무조건의 복종적 신앙입니까? 우리는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아들의 마음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에서 흘러 나옵니다. 성도로써의 모든 삶이 자녀로써의 특권으로 여기기에 짐으로 부담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기쁨이 있어 그 기쁨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봉사에 섬김에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비유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나게 되는데 누가복음 1532절을 보면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단어가 있는데 바로 이 네 동생이라는 표현입니다. 왜 이런 표현을 하는가 하면 앞서 큰 아들은 자신의 동생을 당신의 이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여겼습니다. 즉 가족이 아닌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아버지는 다시 큰 아들에게 가족의 회복을 의도적으로 이 네 동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이러 저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향과 성격이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누가 더 헌신하고 누가 덜 헌신할 수 있으며, 봉사와 헌신의 정도와 강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한 몸을 이룬 지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세우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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