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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KcYSLLq6kJU


요한복음 5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것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1500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약 40여명의 기록자들에게 그들을 감동하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는가 하면 바로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영생에 이르게 되는가에 대하여 바로 성경을 통하여 영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던 이들이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즉 유대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기록 역사 속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말씀을 받은 자들이 이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에 대하여 약속하신 사람들을 조상으로 가지고 있는 자들도 이들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성경을 맡은 자들도 바로 이들의 조상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경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아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경이 사람들이 쓴 삶의 지혜서나 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자기 개발서, 인격 훈련서 등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 조차도 하지 않으며, 성경 자체의 유익 조차도 부인하며, 의미 없으며, 거짓된 종교서적으로 여기는 이들 또한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경우에는 성경의 권위나 성경이 가르침에 대하여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합니다. 이유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스스로 신자라고 고백하는 이들 또한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39절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라는 말은 과거에 한번 생각하였다는 말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생각의 지배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생을 얻는 줄 이라는 말은 과거에 영생을 얻은 것으로 끝이난 한 번의 단회적인 사건을 의미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지속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성경은 언젠가 한번 읽고 영생을 소유한 후에 뒤로 던져버리는 책이 아닌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성경은 영생을 소유하도록 이끄는 책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지속적으로 매일 읽지 않는 이들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장로이면서도 성경을 한번도 안 읽어본 사람도 있습니다. 권사이면서도 성경을 안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사라고 하면서 성경 전체를 한번도 안 읽어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까? 영생은 소유하고 있는데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있다면 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영생을 얻은 것입니까? 성경 외에 다른 곳에서 영생을 얻은 방법이 있습니까? 그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운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안수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세움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장로 임직에 있어서 자신은 솔직하게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고 성경의 말씀이 허구처럼 보이고, 홍해가 갈라지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물고기 다섯마리와 보리떡 두개로 오천명이 먹었다는 기적을 믿을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데도 장로 임직 받으면 믿어지니 받으라고 해서 임직을 받았지만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영생을 얻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교회에 직분자로 세움을 입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절 말씀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권위 즉 영생을 얻게 하는 방편이라는 권위 자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온전하게 제시되고 말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게 되면 성경을 통하여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대다수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이들은 성경을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한다라는 말은 조사하다, 찾다 라는 뜻입니다. 또한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찾고 있는 중으로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을 조사하고 찾음으로 영생을 어떻게 얻게 되는가 하면 바로 성경의 기록 목적과 성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때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이 말은 인간이 무엇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가 하면 성경을 통하여 성경의 내용을 조사하고 탐구하고 찾음으로 얻게 되는데 이 성경을 조사하고 탐구하고 찾다 보면 발견하게 되고 이르게 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성경은 누구에 대한 것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옳은 것입니까? 여러분 성경을 읽으십시오. 성경 속에서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어떻게 성공하는가 하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사람을 다스리며, 기업을 경영하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성공하는 법칙이 담겨 있습니다. 라는 말은 성경을 잘못 읽는 것입니다. 성경의 목적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그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증언한다는 말은 입증하며, 증명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성경은 오직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명하고 있는 것이며,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기업 경영의 원리를 찾으려는 시도나. 심리학의 이론을 만들려는 시도나, 세상 성공의 법칙을 찾으려는 시도나, 자신의 현재의 삶에 안위와 세속적 평안을 얻기 위한 시도는 결코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지목하며, 입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539-40절을 보면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성경은 지속적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지금도 연구하며, 스스로 성경에 대하여는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성경에 대하여 박식하고 해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이들만큼 확실하게 영생을 얻는 자들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을 연구하였지만 성경이 참으로 목적 삼고 있으며, 의도하고자 하는 내용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즉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오기를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이 지속적으로 모든 구절들과 말씀들에서 가리키고 있는 예수를 부인하며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기를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왜 이들은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부하고 있으며 예수님께 나오지 않은 것입니까?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 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자신들의 이해와 믿는 신념에서 나오는 편향된 생각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며 십자가에 죽게 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의 혈통으로 다윗의 왕위로 오실 메시야는 결코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고대하며 기대하는 메시야는 뛰어난 학문적 배경을 가져야 하며, 세상의 모든 지혜자들보다 더욱 돋보이며, 영광스러워야 합니다. 요한복음 715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라고 합니다. 누구에 대하여 말하는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무슨 권세로 사람들을 가르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기대하는 메시야는 세상적으로 학식이 있고 덕망이 있는 다윗 혈통 가운데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741-42절을 보면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는가 라고 멸시하며 천대합니다. 예수님을 처음 본 나다나엘 조차도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온 일이 없다고 합니다. 갈릴리는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에 비천한 곳이며, 교육도 제대로 안되고, 무지한 이들이 사는 아주 시골이 촌동네 입니다. 그곳 출신이 메시야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들의 이성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으며, 정서적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들의 눈을 멀게 하는 편견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이들을 소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40-41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기를 우리도 맹인인가 라고 자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맹인인데 스스로 볼 수 있는 자라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고 합니다. 즉 이들은 맹인인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데 스스로 보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성과 지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자신들의 판단은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편견에 의한 눈이 먼 자들이 자신의 자만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편견과 이러한 인간적인 사고에 속에 갇혀 자만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며, 성경이 입증하고 증명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21절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뻐하다는 단어는 마치 춤을 추고 싶은 감정으로 이어지는 기쁨입니다. 환호와 같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또한 함께 그분 안에 충만한 가운데 주님께서 기도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감사한가 하면 바로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에 대하여 입니다. 여기서 이것을 이라는 것은 이것들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일과 능력과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구원과 영생을 얻는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이것을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와 반대로 자신의 편견과 이성적 지식을 의존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받아 들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께서는 너무나 기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그분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을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지속적으로 누리도록 역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즉 영생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며,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며, 그곳에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우리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주님을 만나는 것이며, 그분께로 나아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며,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편견과 오만에서 벗어나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합시다. 또한 이 영생을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 위하여 말씀 앞으로 날마다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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