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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W0FvAmqsAV4


마태복음 251절 말씀을 보면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한 비유를 하고 계시는데 천국은 마치 열 처녀와 같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즉 초점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들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양하게 이 비유를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제가 거론하고자 하는 것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오히려 버림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11-12절을 보면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왔다고 합니다. 이들은 열 처녀의 절반인 다섯 처녀로 기름을 사러 갔다 뒤에 늦게 온 처녀들입니다. 그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달라고 합니다. 열어 달라고 하는 것은 문이 굳게 닫혔기 때문이며, 그들이 들어가는 것이 거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신랑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즉 신랑에 의해서 거부되며, 부인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어떤 이들은 주장하기를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 다섯 처녀가 신부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버림을 당하는 것을 보니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며 버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라고 하며, 교회에 충성을 다하며, 헌신을 강요하며, 희생적 삶을 견지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더욱 나타내기 위해서 열심으로 교회 일을 하며, 봉사와 섬김의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버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비유에서 오해를 하며, 잘못 이해하게 되는 이유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를 모두 동일하게 같은 부류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제로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이기 때문에 이들은 동일한 목적으로 나간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신랑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러나 2절에서 이들이 같은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마태복음 252절을 보면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해주고 있는 것은 이들은 결혼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에서 같으며,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것에서 같지만 본질적으로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라는 다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같은 점과 차이점이 또 다시 표현되고 있는데 마태복음 253-5절을 보면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라고 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왜 이들이 미련한 처녀들인가 하는 것이 그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미련한 처녀들이 왜 미련한가 하면 이들은 등을 위해서 여분의 기름이 필요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슬기로운 처녀들도 등을 준비했는데 이들이 미련한 처녀들과 다른 점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비유 속에서 우리가 가려내야 하는 진실은 이들은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다섯 처녀와 저들 다섯 처녀는 다른 자들입니다. 한 그룹은 미련한 그룹이고 한 그룹은 슬기로운 그룹입니다. 이것이 중요한데 미련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며, 슬기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미련하다는 말의 의미는 이미 앞서 살펴본 말씀 속에서 그 의미가 드러나는데 등을 준비하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것이 미련한 것입니다. 즉 이 말은 부주의 한, 신중하지 못한, 지혜가 없는 이라는 뜻입니다. 슬기 있는 이란 의미는 신중함, 사려 깊은, 지혜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그들의 인격이고 성품이라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원문에서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라고 할 때에 에산이라는 단어가 동사로서 사용되는데 이는 반복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문법적인 의미로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늘, 항상, 삶의 방식이 부주의 함이 넘치는 자들이었으며, 깊은 사고력과, 신중하게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들을 대충하는 이들이었으며, 자신들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의미 없이 따져보지 않고 행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들은 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의 들러리로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의 집에 올 때에 저녁에 오기 때문에 신부의 친구들은 등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당시에 신랑은 신부의 집에 올 때에 몇 시에 올지를 말하지 않고 옵니다. 이것이 당시의 풍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등을 준비할 때에 기름도 준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할 것을 누구나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들러리로 신랑을 신부의 집에 모시고 갈 신부의 친구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지에 대하여 생각하면 기름을 준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주의하고, 신중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습관화 되고 생활이 된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을 준비하면서 기름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며, 그들의 그러한 습관이 기름을 준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오직 결혼이라는 즐거움만 생각하며, 잔치라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자신이 무엇을 준비하며, 자신의 일과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무관심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어떠한 결말에 이르게 되는지를 다음 내용들을 통하여 보게 되면 마태복음 256-7절을 보면 밤중에 소리가 납니다. 이 소리는 신랑이 온다는 소리였습니다. 처녀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신랑을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입니다. 이에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꺼져갑니다. 8-9절을 보면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급함에 약간의 명령이 담겨져 있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강요에 대하여 슬기 있는 자들이 말하기를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합니다. 거절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굳게 닫힌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의 절규가 표현되고 있는데 11절을 보면 그 후에 남겨진 다섯의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라고 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표현은 간절한 표현으로 후회와 애통함이 담겨져 있는 표현입니다.

        이에 대하여 신랑의 대답을 보면 12-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라고 합니다. 알지 못한다는 말은 너는 내게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는 의미이며, 너는 진정으로 나에게 속하여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신랑을 맞을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채 혼인 잔치에 참여하려고 하였으며, 신랑에 대한 자신의 준비가 무엇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들이기 때문에 신랑과 관련이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이 비유의 요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에 주님께서는 비유의 핵심을 말씀하시는데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날 즉 주님이 오시는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준비하고 예비하고 있어야 하는가 하면 주님이 오심을 준비하고 예비하며,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이 어떤 특별한 행위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이 의미하는 것처럼 삶을 신중하고 사려 깊고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시는 주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즉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미련한 다섯 처녀에 대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구원이 실패하거나 취소되거나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 처녀가 등을 준비하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을 통하여 우리는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음을 봅니다. 즉 이들은 마치 종말 때에 가시적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불신자들은 결코 주님이 오심에 대하여 알거나 맞이하려고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시적인 즉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는 비록 같이 예배를 드리고 같은 신자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처럼 자신들이 얻을 즐거움을 바라고 특권들을 누리기를 원하며 잔치에 참여하고 싶어서 교회에 온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밖에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사들을 즐기기를 원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독교의 모든 복락들을 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어떠한 책임도 원치 않으며, 참된 믿음이나 바른 신앙이나 거룩함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들을 부주의하며, 무관심하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며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미련한 처녀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분별력이 없는 자들이며,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점검하며, 자신의 삶을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지 않고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며,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깊은 주의를 가지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늘 상 점검하며, 신중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내가 주님을 정말 믿고 있는가? 나는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 있으며, 그분이 내 안에 살아 계시며, 나는 그분 안에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시험해보고 점검하는 상태가 바로 깨어 있는 자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깨어 있지 못한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맞으러 나가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잔치의 즐거움만 생각하며 자신이 천국에 가리라 스스로 믿는 확신 가운데 어리석게 나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시적인 교회 즉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서 가라지만 알곡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슬기 있는 자들이 되어 자신의 믿음과 신앙이 바른지를 점검하며, 신중하게 인생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날에 버리워진 자들의 자리에 서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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