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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LlK5q7ltP2A


오늘 함께 살펴볼 갈라디아서 61절부터 5절까지의 본문은 그냥 읽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어떤 의미가 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 상반되는 것 같은 말들이 난해 함을 더합니다.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6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65절을 보면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 임이니 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본문을 생각해 보면 혹시 바울이 이상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또 갈라디아서 61절을 보면 만일 누가 범죄한 일이 있거든 너 자신을 돌아보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4절을 보면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합니다.

        우선 1절을 바울은 형제들아 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물론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이라고 운을 뗍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났습니다. 그때 같은 신자요 한 교회 성도로써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본문을 보면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라고 합니다. 범죄한 일이 라는 단어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여야 하는데 이 단어는 의도적으로 죄를 짓거나 계획적으로 죄를 지은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심각한 범죄에 대한 단어도 아닙니다. 이 단의 의미는 옆으로 미끄러진다는 의미입니다. 즉 의도적이지 않고 믿음이 약해서 신앙 가까이에서 멀어지거나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 사람은 믿음이 약해서 흔들리며 진리에서 떨어져 멀어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에게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으라고 합니다.

        믿음이 약해서 흔들리고 진리에서 미끄러져서 멀어지고 있는 자를 바로 잡으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중요합니다. 바로 잡으라는 말은 고치다, 틀린 것을 바로 잡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은 restore의 의미입니다. 즉 회복시킨다 라는 뜻입니다. 흔들려서 믿음에서 떨어지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거든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잡으라는 단어의 어원이 주는 의미가 큽니다. 바로 잡다라는 단어의 어원의 뜻은 부러진 것을 고친다는 의미로 뒤틀리거나 부러지거나 빠진 뼈를 다시 원상 복귀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바울이 왜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가 이제 그려져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고 한 몸이며 성도들은 그 교회의 각 지체들입니다. 즉 각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교회에 대한 정의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해 줍니다.

        한 몸이 교회를 생각하며 지금까지의 내용을 이해하면 이렇습니다. 누군가 믿음이 흔들리고 신앙이 흔들려 미혹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이 나타나거든 너희는 그것을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으라 즉 빠지거나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추어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어 제 기능을 하도록 회복시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말은 한 몸인 지체로써 연약한 자를 도우라는 뜻입니다.

        몸은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연약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발생하면 몸의 지체들이 서로 도움으로 온전한 몸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팔이 부러져서 아프다고 캐스팅하고 다니는 것이 귀찮다고 잘라버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프고 귀찮은데 거리적 거리는 데 쓸모가 없는데 왜 잘라 버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더욱 불편할뿐더러 그 팔을 대신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지금은 귀찮지만 그리고 몸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팔이 온전해 지면 그때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괴롭고 어렵지만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정상적으로 기능을 할 때까지 입니다.

        여러분 몸의 지체 중에서 쓸모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손톱도 귀하지만 발톱도 귀합니다. 우리 중에 쓸모 없는 의미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몸의 모든 지체는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며 각기 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작은 몸 안의 돌 하나가 사람을 정신 없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현재 지체가 적다 보니 모두가 귀합니다. 그러나 지체가 많아 지면 어떤 지체는 필요 없다고 여길 수 있으며 하찮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입니까? 짐을 서로 져서 성취되는 것이 무슨 그리스도의 법입니까?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 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나 도적적 윤리적인 법은 책망하고 의무를 주고 죄를 정하는 것입니다. 짐을 서로 지기 보다는 자신의 일을 자신이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본문의 그리스도의 법은 이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 성취하라고 합니까? 너희가 서로의 짐을 짐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법은 서로의 짐을 지는 것과 연관이 있고 그렇게 해야만 성취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짐을 지어 줌으로 몸이 어떻게 됩니까? 온전해 집니다. 떼어내고 잘라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지체가 그대로 붙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체가 낳을 때가지 온전해서 제 기능을 할 때가지 짐을 지어주기 때문에 연약한 지체는 힘을 얻게 될 것이고 회복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몸은 정상이 되고 모든 지체는 제 기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은 그 머리의 지시를 잘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몸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인 3절을 보면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는 모두 열린 교회라는 한 몸의 각 지체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지체가 말합니다. 나는 부러지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았고 꺾 이지도 않았으니 나는 합격이고 다른 사람은 이런 문제 저런 문제가 있으니 불합격이다 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몸입니다. 팔이 자신은 자신의 기능을 잘하고 있다고 다리가 없는데도 잘난 척 하면서 온전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것입니다. 자신만 괜찮으면 몸이 성한 줄 알고 온전한 줄 아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온전한 몸은 자신만 잘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함께 세워지고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만 잘났다고 몸이 온전해 지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몸에 있는 지체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서로 잘났다고 다투지 않습니다.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고유한 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경쟁의식이나 비교의식이나 우월의식이 없어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몸에 있는 지체들이기 때문에 한 지체가 잘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되는 것이고 한 지체가 잘못 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못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중 누군가 믿지 않는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거나 인정을 받으면 열리 교회 전체가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욕을 먹고 손가락 질을 당하면 우리는 그곳에 없었지만 열린 교회 전체가 욕을 먹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 구절인 4절을 보면 이 말은 몸의 각각의 지체는 고유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지체가 대신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자랑할 것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손이 발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귀가 코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각 지체는 자기의 일을 살피면 깨닫게 됩니다. 내일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지 그리고 그 일이 내게만 주어진 일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각각 모든 지체는 자기의 짐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온전한 몸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2. 하나님의 충성과 우리의 충성 신명기 7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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