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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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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https://youtu.be/Rz5aVyaphhk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에서는 예수님과 한 청년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 17절을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러한 행위가 나타내는 것은 절박함이 있고, 간절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지금 예수님으로부터 알고자 하며 찾고자 하는 것은 영생을 얻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병행 본문을 보면 이 사람은 관원이라고 합니다. 관원이라는 것은 공무원을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사람에 대한 또 한가지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을 청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 사람은 큰 부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부자 청년 관원은 그가 얻고자 하는 영생의 길을 발견하였으며, 영생을 얻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 22절을 보면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자 청년 관원의 모습은 그가 예수님께 나아올 때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이 부자 청년 관원의 얼굴에는 어두움으로 그의 마음에는 근심으로 인한 번민으로 가득하게 한 것입니까?

         우리는 17절에서 부자 청년 관원의 상태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것이 아무런 문제 없는 문장으로 보이지만 원문에서는 이율배반적인 형태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이 부자 청년 관원은 영생은 내가 무엇을 함으로 얻는 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생을 얻는다는 표현을 보면 얻는다는 단어는 나의 노력이나 수고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심으로 얻을 때 즉 노력이나 수고 없이 거저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부자 청년 관원은 내가 무슨 선을 행하여야 영생을 거저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내가 영생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과 영생은 거저 얻는 것이라는 두 논리적 충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이 사람은 영생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 조차도 혼란스러운 것이며, 정확히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을 찾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이 부자 청년 관원의 맹목적 열심과 노력이 결코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것마저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예수님께 부자 청년 관원에게 하시는 말씀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는데 하시며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주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핵심은 하나님 외에는 선하신 분은 없으며 내가 하나님으로 왔다는 사실을 네가 알지 못한다면 네가 나를 선한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가리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은 청년에게 네게 대답하고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시며 너는 내가 네게 주는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 부자 청년 관원에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 나아왔던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맛보며 즐거워하며 돌아갔으며 왜 어떤 이들은 오히려 증오와 질시와 분노와 슬픔 가운데 돌아가게 되는가가 이것으로 결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 나오는 모든 자는, 그에게서 영생을 얻기를 원하며 복을 받기를 원하며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 누구든지 오직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말씀에는 오직 순종만이 요구되며, 복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 관원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누구신지를 가르치시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말씀하시기 시작합니다. 19-20절을 보면 왜 예수님께서 십계명 가운데 5계명부터 말씀하고 있는가는 1계명부터 4계명 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으로 이것이 실제로 참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닌 보이는 이웃에게 행하는 것으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 관원은 이러한 것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맞다, 틀리다 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21절에서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 개의 중요한 동사로 표현되고 있는데 가라, 팔라, 주라는 것으로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21절에서 가서 네 모든 것을 다 팔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것은 앞의 20절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부자 청년 관원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인 것입니다. 내가 모든 율법을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 라는 말에 대하여 주님이 왜 율법에 없는 가서 모든 물건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라고 하시는가 하는 것은 5계명부터 10계명까지 계명은 5계명 즉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을 제외하고 모두다 소극적인 하지 말라의 계명들입니다. 즉 소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이 부자 청년 관원은 율법에 대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5계명부터 10계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원래의 취지요 의미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즉 너는 율법을 지킨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네 자신의 의를 드러냄이고 네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으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왜 재물을 다 팔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는가 하면 이 부자 청년 관원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물질을 사랑하며 물질을 섬기며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 22절로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해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 청년 관원은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는 하나님의 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가장 소극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법에 대응하고 있었던 것이며 실제적으로 그의 마음에는 그가 가진 재물이 그가 섬기고 예배하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 관원이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는 그의 영혼을 사랑하시며 관심을 기울이시는 분이 선한 선생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그의 영혼의 문제와 상태를 진단하시고 그로 하여금 영생에 이르도록 이끄시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의 영혼을 깨닫게 하시려 율법을 통하여 그의 부족함을 일깨우시며, 그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다 지키었다는 자만심으로 가득한 말에 주님은 네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네 안에 가득한 물질에 대한 탐욕과 욕심을 버리고 나를 쫓으라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이 사람 안에 가득하였던 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이 부자 청년 관원은 분명히 영생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람의 마음에는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에 합당하지 않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물질입니다. 우리가 부자 청년 관원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물질을 다 팔아야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네 마음에 무엇을 두고 사는가 입니다. 영생을 구하고 있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네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는 것을 거부하고 버려야 하며 그것들을 먼저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부자 청년 관원에게 네가 섬기는 모든 것, 네가 의지하던 모든 것, 네가 좋아하며 사랑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요청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생을 얻으시길 원하신다면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거나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섬겨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따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섬기며 봉사할 대상은 없는 것입니다. 부자 관원 청년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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