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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 비유가 어떤 연유에서 말씀해 졌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율법사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누가 내 이웃인가에 대한 답을 하십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비유의 내용을 듣다 보면 예수님의 답변이 단순하게 질문의 정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고쳐주시고 율법사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답변해 주심을 보게 됩니다. 즉 이 비유는 단순이 내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의 대답을 넘어 사랑이라는 개념의 전체적인 형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한 사람을 등장시키십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안타깝게 강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은 험하고 몸을 숨길 바위들이 많아서 강도들이 자주 출연했던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길을 피의 도로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비유 속의 강도를 만난 사람은 강도들에게 옷을 빼앗기고 맞기까지 하여 거의 죽게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때 한 인물이 비유 속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등장인물이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피하여 갔다고 말합니다. 피하여 갔다는 것은 그를 보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은 레위인입니다. 그 또한 앞의 제사장처럼 행동하였습니다. 비유 속에서는 왜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였는지 말하고 있지 않으니 추론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둘의 특징은 유대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 이 두 부류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을 위해 일하도록 선택하신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섬기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하나님 섬기는 일에 피해가 갈까 봐 죽어가는 혹은 죽은 지도 모를 강도 만난 자를 자신들의 부정을 피하기 위해 피하여 갔는지도 모릅니다. 이 두 부류가 대표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에 관한 계명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실천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온전함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편협 된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의 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개의 사랑은 서로 차원과 질이 다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랑이 먼저이며 우선 순위의 상위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은 것입니다. 이 둘은 별개이거나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4: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라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이 두 사랑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특히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사랑하면 된다는 사고 속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만 잘 섬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은 하나님만 잘 경외하면 그것이 신앙 생활의 최우선이고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하여 율법사의 이런 편협 됨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속에서 사마리아 사람을 등장시키심으로 이웃에 대하여 제한 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웃에 대한 경계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 결말에서 예수님은 율법사에 묻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의 되겠느냐? 이 질문은 수동형의 의미로 의역하게 되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졌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웃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로 만드는 자들이 아니라 필요한 자들에게 가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그들의 이웃의 되어 주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은 내가 선택하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의 이웃의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마지막 말씀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행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서 이웃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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