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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는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생을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주님이 부르실 때에 어떻게 마지막을 준비하며 임종을 맞이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답게 임종을 맞이해야 하며 믿음으로 그날을 준비하며 예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7장 전체는 산헤드린 공회원 앞에서 한 스데반의 설교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한 것이 너희들이라는 말에 그들은 스데반을 죽이려고 돌로 치기 시작합니다. 59절에서 이때 스데반이 부르짖었는데 그 내용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말입니다. 그가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스데반이 주 예수여 라고 부르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데반의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예수여 라고 하지 않고 주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주인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 자신의 영혼의 주인께서 자신의 영혼을 받아 달라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스데반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미 앞서 우리 주님께서도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23 46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큰 소리로 아버지의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한다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 만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어떤 면에서 신비입니다. 신비라는 말은 감추어진 것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잠시 죽음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쓴 책들이나 말을 통하여 사람이 죽을 때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에 대한 다양한 학설과 이론들이 있지만 무엇 하나 확실히 믿을 만한 것은 없습니다. 각자의 내용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많은 불일치를 가지고 있으며 확실이 죽은 것인지 아니면 가사 상태에 놓인 것인지 조차 의학적으로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서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부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확실하게 죽었다고 살아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잠깐도 아니고 4일이나 지나 시체가 썩어 부패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성경은 현재형으로 분명히 사람의 몸이 썩고 있어서 냄새가 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났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죽음의 상태나 죽은 후에 인간에 일어난 어떠한 일도 말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죽음 직후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감추고 있으며 여전히 신비에 놓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의탁할 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의 영혼을 받아 들이신다는 것입니다. 7:55절을 보면 이 구절은 유일하며 특별한 구절입니다. 어떤 면에서 유일한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계시다는 표현에서 유일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분으로 묘사되는데 유독 여기에서는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시는 모습에 대하여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그 중에 문맥적으로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증언하는 스데반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그의 증언을 도우시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주는 특별함은 주님께서 스데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을 자신에게 맡길 수 있도록 확신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종을 맞이하는 신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죽음 직후에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인가 대하여 여러 가지 잘못된 개념으로 인해 두려움과 공포에 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이 죽음에 이를 때에 그 마음의 두려움을 없애주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의지하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벗어나는 순간 보이지는 않는 세상을 보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는 우리를 맞아 주시는 주님이 계시며 그분이 기쁨으로 우리의 영혼을 받아 주실 것을 믿고 평안 가운데 주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신자의 믿음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임종시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공포감에 휩싸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죽음에 대하여 두려움과 공포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인성 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 때문입니다. 인간은 몸과 영혼이 특이하고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연합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야 하며 육체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야 됨을 이해해야 합니다. 고전 15:53절을 보면 신자에게 있어서 육신의 죽음은 그 육신이 썩어 썩지 않음을 입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드시라는 말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신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며 공포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모해야 하며 기쁨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 죄로 인해 오염된 몸이 변화되어 모든 죄에서 완전히 벗어난 온전한 몸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공포와 염려에 휩싸이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세상에 대한 애착 때문입니다. 때론 신자들에게도 이러한 애착이 있습니다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서 또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더욱 참여 하고 싶어서 그러한 열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임종에 관하여 생각할 때에 신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하나님의 손에 있어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고유한 권한이며 창조주의 주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죽음은 원치 않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원망과 한탄의 일이 될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처럼 이 땅에 미련을 두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일들에 매이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신자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자들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시며 그의 뜻은 항상 옳으며 선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에 눈멀고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우리는 이 땅을 떠는 것을 머뭇거리며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두려움과 염려와 공포가 가득하게 되고 우리의 임종은 결코 복된 것이 아닌 저주와 같이 덫과 같이 임한 것이 됩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를 위해 산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살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았던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두 개의 종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에 우리는 이제 현재의 육신의 몸에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며 현재의 삶은 끝이나고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개인의 죽음이 바로 종말입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들어서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역시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두 종말이 언제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인생을 사는 동안에 우리는 이 둘 날 가운데 한 날을 반드시 맞이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날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이 날에 대한 준비는 두려움과 공포가 아닙니다. 신자에게는 그의 영혼을 의탁할 주님이 계십니다. 그분께 영혼을 의탁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기쁘게 맞아 주실 것이며 이 땅에서의 모든 수고에서 벗어나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감을 인하여 우리는 기쁨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죽음이란 이 땅에서 눈을 감고 천국에서 눈을 뜨는 것이다 라는 어느 부모가 죽음을 앞둔 자녀에게 말한 것처럼 이 땅의 것과 완전히 이별하며 이제 믿음으로 바라 보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되는 감격과 기쁨의 순간인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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