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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16.05.27 03:42

내일 <마태복음 6장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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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qaYu4tqk2DE


마태복음 6 34젊 말씀은 19절부터 시작된 물질에 대한 신자의 자세와 태도에 관한 말씀의 종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이 구절에는 두 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염려하다 라는 단어입니다. 염려하다라는 말은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양한 생각들이 마음을 각기 지배하고 다스려 마음이 혼란스럽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나뉘게 하는 염려는 어떻게 발생하지는 보면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문맥 속에서 25절을 보면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라는 염려에 매여 살아가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람이 염려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한 일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먹고 마셔야 생존할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 또한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의복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추위와 더위에서 지켜줄 집 또한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의식주가 항상 필요한 존재이며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목숨을 위하여 살고 몸을 위하여 사는 것이 본능적으로 향하여지는 방향성이며 삶의 동기요 목적이 되어집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하고 자신의 몸을 위하여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의심 없는 참된 인생의 진리요 참이라고 여겨지는데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숨과 몸은 어떻게 보존되며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궁금증입니다.

         주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라고 명령하시고 멈추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 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매일이라는 시간은 많은 괴로움과 고통이요 힘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주님이 알고 계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의 괴로움을 아시고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것 만으로 우리는 실제적으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그래 주님이 한 날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아시는 구나 그렇게 해서 위로가 될 수 있지만 그 위로가 잠시 잠깐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실제적으로 목숨을 위하지 않고 몸을 위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하며 그 도움에 대한 약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약속이 바로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라는 말입니다. 이 문장을 해석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일은 내일 스스로가 염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내일 이라는 말을 주어로 사용합니다. 즉 내일이 자신 스스로 내일을 염려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일을 마치 살아 있는 어떤 것처럼 사용하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볼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내일이 내일을 돌보며 보살피며 보존하며 목숨과 몸을 지킬 것이라는 것은 첫번째의 의미는 내일이란 너희의 소유도 아니고 너희가 지배하거나 움직이거나 조종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내일은 내일이 알아서 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 27절을 보면 사람의 염려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 이 키라는 단어는 생명이라고 번역이 되기도 합니다. 이 단어의 다른 문맥들 속에서는 생명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대부분 생명으로 번역을 합니다. 즉 너희가 아무리 염려 한다고 해서 너희의 생명을 한 시간이라도 더 늘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자는 없습니다.

         두번째의 의미는 내일이 내일을 염려하고 돌보며 관리며 보존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내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라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왜냐하면 내일은 내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 26절을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라고 합니다. 귀하지 아니하냐 라는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답해야 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6 30절에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라는 말에 우리는 답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적 진리를 믿지 말며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먹이며 마시며 입히시는 자가 없다고 여기기에 자신의 목숨과 몸을 위하여 염려하며 마음이 나뉘어 하나님 없이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의 주인이시며 우리가 우리의 목숨과 몸을 위하여 살지 않아도 우리의 목숨과 몸을 위하여 일하시는 분이 계신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염려하여 마음이 나뉘고 생각이 나뉘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분열되어 주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의 목숨과 몸을 위하여 살려고 발버둥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평강을 얻고 염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다 마음에 평안과 위로와 안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30절에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적으면 하나님께 염려를 맡길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적으면 공중의 새를 보아도 아무런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공중의 새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먹이시고 기르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또한 믿음이 적으면 들풀을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으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신다는 사실을 믿고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면 믿음이 적다면 그 적은 믿음 때문에 여전히 목숨을 위하고 몸을 위하여 사는 삶을 멈추지 못한다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염려 없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며 입히시며 기르시며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지속적으로 묵상하셔야 합니다. 묵상이라는 말은 때론 작은 소리를 계속해서 중얼거린다는 뜻을 가집니다.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마음 속에 그리고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읊조려야 합니다. 그 말씀이 성령을 통하여 내 마음에 확신과 믿음으로 잘 박힌 못과 같이 박히도록 계속 묵상해야 합니다. 염려가 마음을 지배하려 할 때마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 올 때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말씀이 희미해 지려 할 때마다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32절을 보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십니다. 우리 목숨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아십니다. 아신다는 것은 그냥 알고 만 있다는 것으로 참고만 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며 의탁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위하고 몸을 위하여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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