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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zHKVmoTlhJI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내용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입니다. 신약적 의미에서 본문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구원을 얻는 믿음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우선 창세기의 본문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은 12절에서 사라가 웃게 되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는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또한 사라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이 지났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대하여 로마서 4 1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다고 합니다. 한글 성경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다고 번역을 하였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같다라는 말입니다. 같다라는 말은 잘못 이해하면 그렇게 여겨진다, 그렇게 보여진다 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렇게 여겨지거나 보여지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몸이 죽은 것입니다. 그의 몸이 죽었다는 것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에 있어서 그는 이제 완전히 무능한 것이며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라의 뱃속의 태도 죽었습니다. 그 기능이 멈춘 것이 아니라 상실되었고 죽었습니다. 이 둘은 어느 한쪽도 절대로 자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로 죽은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사라 본인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속으로 웃습니다. 그 웃음은 비웃음입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는데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라는 것입니다. 사라의 이 말은 자조의 말로 자신에 대한 평가입니다. 나는 이미 늙어 쇠약해진 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남편도 늙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은 사라의 눈에는 끝이 난 것입니다. 나와 내 남편이 모든 늙어진 후인데. 이 말은 만약 조금 더 빨리 더 늙어 쇠약하기 전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가능성도 있고 희망도 있을 것인데 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라가 이미 늦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지나간 후입니다 라며 비웃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신자들 마음속에 하나님 너무 늦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기에는 때가 오래 되었습니다 라는 자조의 쓴 웃음을 짓는 일들이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에 대하여 어떠한 기대도 소망도 가지지 못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으로 웃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에 대하여 소망을 접고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확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을 뛰게 하거나 마음을 울리지 못합니다.

         사라의 비웃음에 대하여 13절에 하나님의 질책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왜 웃느냐고 물으십니다. 직역하면 사라가 어찌하여 이렇게 웃느냐로 하나님의 질책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웃을 수 있느냐? 네 몸이 비록 늙고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것으로 여긴다 해도 어떻게 네가 이렇게 비웃을 수 있는가? 사라는 왜 비웃으면 안됩니까? 자신의 몸이 죽고 자신의 남편의 몸도 죽어 이제 육체적으로 자식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죽은 상태인데도 왜 코웃음을 치며 비웃으면 안됩니까? 이성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전혀 읽어날 수 없는 것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그 말에 대하여 왜 비웃으면 안됩니까? 불가능하고 천지 개벽할 일인데도 왜 비웃이면 안됩니까? 왜냐하면 이 약속의 말씀은 사람이 하는 약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유한한 인간이 유한한 인간에 하는 약속이 아닐 뿐만 아니라 능력과 힘이 자연 법칙과 질서에 제한되며 종속된 자가 주는 약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4절에서 왜 사라가 웃으면 안 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는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놀랍고 기이한 일을 하지 못하겠는가?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라에게 아들을 주실 것입니다. 비록 그의 몸이 죽었고 그의 남편의 몸이 죽었다 해도 말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 속에서 믿음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로마서 4 19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과 태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에서 사라는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두려움 가운데 그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약하여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알고도 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곰곰히 생각하다, 깊이 생각하다는 뜻으로 그렇게 하여 결과적으로 알게 된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경험적으로 남편과 자신의 몸은 자녀를 낳기에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지식적으로도 의학적으로 이미 그들의 몸은 죽은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자신의 상태에 따라 확신을 가지거나 주변 여건에 따라 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의 상태나 상황이나 여건이나 주변 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약하여지지 않습니다. 약하여 지다라는 말은 병들어 무기력해지는 상태로 비틀거리며 흔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구원을 얻는 참된 믿음은 흔들리거나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20절과 21절을 보면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견고해집니다. 의심이란 분리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 마음을 두며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견고해집니다. 이 말은 강하여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믿음으로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듯이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구원의 믿음을 주심으로 그들을 믿음으로 강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약속하신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 자녀를 얻는 믿음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22절부터 24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아들을 주시리라는 약속을 믿음입니다. 자신의 몸이 죽었는데도 살아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습니다. 23절에서는 이 믿음이 아브라함에게만 의롭게 여겨진 것이 아니라 24절에서 우리도 위함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이 믿음을 의로 여기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믿음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로마서 17절에서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아브라함을 살리셨고 죽은 사라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들의 의로 여겨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럼으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우리 또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구원의 진수이며 참된 내용이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께는 능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얻는 믿음은 이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믿지 못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말씀에 대하여 비웃을 것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분의 말씀의 어떤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것입니까? 믿음이 약하여지지 마십시오. 병들어 흔들리고 비틀거리지 마십시오. 견고하여져야 합니다. 의심하여 마음이 나뉘어져서 한편으로 하나님을 믿을까 신뢰할까 한편으로는 세상을 신뢰하며 믿을까 저울질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강하여져서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기를 믿음으로 강하여지도록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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